<미친 뱀에게 경배를> 작가 노트 (2024)
천둥이 치는 밤 뱀들은 깊은 물 밑에서 전율하며 춤추었다
천둥이 치는 밤 뱀들은 깊은 물 밑에서 전율하며 춤추었다. 그들을 물살에 부서지는 번갯불을 조각조각 삼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둥그런 똬리를 틀고 축축한 하늘에 오르는 날을 기다렸다. 천 년은 살아남기에도 기다리기에도 무구한 시간이었다. 오로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 즉 용이 하늘에 나타난 밤만이 승천하고자 하는 뱀들의 간절한 소망에 불꽃을 일으켜주었다.
나의 아버지는 전두환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으로 수감되어 고문을 겪고 후유증으로 반평생 정신질환을 앓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재작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갑작스레 작고하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투병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스무 살 무렵 나 역시도 비슷한 정신증을 앓게 되면서 우리는 모종의 치료 공동체를 형성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거의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면서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광증이 주관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까운 이의 광증이 주는 고통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자신의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약을 챙겨 드시게 되었다. 아버지와 딸이 모두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것은 절망적인 사실이겠지만 ‘광기’란 적어도 아버지와 나에게는 아주 내밀하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무엇이었다.
학부 초년생 시절에는 누구나 소위 ‘일기장 작업’을 한다고 한다. 나의 주제는 단연 아버지와 나의 정신병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서사에만 갇혀 맴도는 게 싫어서 개인적인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선 게 ‘우연’에 관한 회화 작업이었다. 나의 의도나 선택을 가능한 배제하면서 재료가 가진 고유한 물성이나 작업 과정의 직관적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나의 작가적인 태도에 개방성을 부여하면서 회화적 역량을 키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그림은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연이라는 주제 안에서 공백으로 비워두려 했던 ‘나’ 자신의 자리에 언제나 ‘나’의 정서와 서사가 자리한다는 모순을 늘 안고 있었다. 작가의 의도를 배제한다는 작가의 의도라는 자가당착에 봉착해 그림이 갈 길을 잃어갈 즈음 갑작스레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다시 나의 서사로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헌정한 나의 두 번째 개인전 《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 우리가 서로 주고받았던 영향력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후 작업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보다 확장된 주제를 나의 삶과 깊은 내면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길어 올렸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인력으로 작용해온 ‘광기’였다. 나의 유년시절을 엉망진창으로 비틀어놓았던 아버지의 광기와, 스무 살 이후에는 정신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삶을 이쪽으로 저쪽으로 흔들어대던 나의 광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내가 경험과 사유를 통해 규정하는 광기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 전시는 ‘뱀’을 광기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시작한다. 뱀 중에서도 깊은 연못에 살며 천년을 기다려 용이 되어 승천하기를 꿈꾸는 이무기다. 불가능한 초월의 욕망을 품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뱀이다. 그러나 나는 이 뱀이 때때로 미친 몸부림을 친다고 상상했다. 용이 되고 싶어서, 또는 이미 용이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섬망에 빠진 채 몸부림친다고 말이다. 그것이 내가 규정하는 광기다. 광증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스스로가 신이라고 믿게 되기 십상이고, 자신이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객관성이 무너지고 주관성이 온 정신을 지배하면서 겪는 전지 전능감이다. 아버지는 그러한 광증을 자신의 초월의 철학과 연관시켰고 내가 보기에 그것은 아버지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패착이었다. 나에게 정신병은 길들여야 하는 성질 사나운 맹견과도 같은 것이었고 잘 가두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과 맞물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간됨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신처럼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곧 광기와 맞닿아 있고, 이는 인간 본성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에서 뱀이 인간에게 속삭인 내용이기도 하다.
<만다라>에서 레이어가 겹쳐지듯 뱀 상징은 내게 관념적으로 겹쳐진다. 치유의 상징인 뱀, 지혜의 상징인 뱀, 그리고 칼 융이 인간 자아실현의 완성의 상징으로 삼았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며 자신의 왕성한 지적 욕구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을 남겼던 아비 바르부르크의 저작 「뱀 의식」. 칼 세이건이 인간 지성의 상징으로 붙였던 제목인 『에덴의 용』까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광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런저런 도상들을 종횡무진하며 이미지를 겹쳐 올린다. 칼 융이 수집한 그림들, 중세 삽화들, 후광을 표현한 도형들,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자연의 무늬들, 단청까지. 거기에는 ‘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것은 우로보로스의 형상이기도 하다. 서로 무관한 것들을 확장된 사고로 연관 짓고 통일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 지성의 본질이고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을 깔때기처럼 모아 자신의 광적 신념으로 융해시키는 광인의 사고와 다르지 않다.
<뱀의 기적>은 용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뱀을 표현하기 위해 용과 뱀을 다룬 동서양의 이미지를 한데 엮은 것이다. 구름 속의 용을 그린 중세 일본 수묵화와 우리나라 용 민화, 근대 독일의 뱀 삽화가 겹쳐져 나타난다. 레이어 밑에 깔린 용의 이미지는 해체되고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은 고통스러운 듯, 분노한 듯, 환희에 찬 듯 춤을 추는 뱀의 형상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 스스로는 극도의 고양감을 느끼는 데 반해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그는 고통스럽게 살아 날뛰는 한 개의 초라한 육체다. 나는 그러한 역설적인 느낌을 그림에 담아내려고 했고, 때때로 허물을 벗듯 극한의 시간을 겪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던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규정하는 ‘광기’의 파토스다.
<해>와 <달>은 <만다라>와 <뱀의 기적>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이 꼬리를 물면서 뱀은 원형이 되고 이 원은 해와 달을 연상시키며 영원과 순환을 뜻하는 다른 원형의 상징들과 연결된다. 나는 이에 <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달>에는 관음보살의 이미지를 얹었다. 여기에는 종교적 체험과 광적 체험이 궤를 같이 한다는 나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종교가 현실을 초월하듯 광기도 객관을 초월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가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다면 종교는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존재에 대한 체험과 믿음은 광기가 깊은 신앙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만다라>는 광기의 로고스, <뱀의 기적>은 광기의 파토스, <해>와 <달>은 광기의 에토스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곧 <미친 뱀에게 경배를>, 즉 광기에 다다른 자를 경외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지성의 기저에 깔린 본질이기 때문이며, 그 숨 막히는 심연과도 같은 본질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는 살아남고자 사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 초년생 시절에는 누구나 소위 ‘일기장 작업’을 한다고 한다. 나의 주제는 단연 아버지와 나의 정신병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서사에만 갇혀 맴도는 게 싫어서 개인적인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선 게 ‘우연’에 관한 회화 작업이었다. 나의 의도나 선택을 가능한 배제하면서 재료가 가진 고유한 물성이나 작업 과정의 직관적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나의 작가적인 태도에 개방성을 부여하면서 회화적 역량을 키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그림은 나온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연이라는 주제 안에서 공백으로 비워두려 했던 ‘나’ 자신의 자리에 언제나 ‘나’의 정서와 서사가 자리한다는 모순을 늘 안고 있었다. 작가의 의도를 배제한다는 작가의 의도라는 자가당착에 봉착해 그림이 갈 길을 잃어갈 즈음 갑작스레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다시 나의 서사로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헌정한 나의 두 번째 개인전 《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는 아버지와 나의 관계, 우리가 서로 주고받았던 영향력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후 작업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보다 확장된 주제를 나의 삶과 깊은 내면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길어 올렸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인력으로 작용해온 ‘광기’였다. 나의 유년시절을 엉망진창으로 비틀어놓았던 아버지의 광기와, 스무 살 이후에는 정신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삶을 이쪽으로 저쪽으로 흔들어대던 나의 광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내가 경험과 사유를 통해 규정하는 광기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 전시는 ‘뱀’을 광기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시작한다. 뱀 중에서도 깊은 연못에 살며 천년을 기다려 용이 되어 승천하기를 꿈꾸는 이무기다. 불가능한 초월의 욕망을 품고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뱀이다. 그러나 나는 이 뱀이 때때로 미친 몸부림을 친다고 상상했다. 용이 되고 싶어서, 또는 이미 용이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섬망에 빠진 채 몸부림친다고 말이다. 그것이 내가 규정하는 광기다. 광증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스스로가 신이라고 믿게 되기 십상이고, 자신이 초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객관성이 무너지고 주관성이 온 정신을 지배하면서 겪는 전지 전능감이다. 아버지는 그러한 광증을 자신의 초월의 철학과 연관시켰고 내가 보기에 그것은 아버지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패착이었다. 나에게 정신병은 길들여야 하는 성질 사나운 맹견과도 같은 것이었고 잘 가두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과 맞물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인간됨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신처럼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곧 광기와 맞닿아 있고, 이는 인간 본성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에서 뱀이 인간에게 속삭인 내용이기도 하다.
<만다라>에서 레이어가 겹쳐지듯 뱀 상징은 내게 관념적으로 겹쳐진다. 치유의 상징인 뱀, 지혜의 상징인 뱀, 그리고 칼 융이 인간 자아실현의 완성의 상징으로 삼았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며 자신의 왕성한 지적 욕구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을 남겼던 아비 바르부르크의 저작 「뱀 의식」. 칼 세이건이 인간 지성의 상징으로 붙였던 제목인 『에덴의 용』까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광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런저런 도상들을 종횡무진하며 이미지를 겹쳐 올린다. 칼 융이 수집한 그림들, 중세 삽화들, 후광을 표현한 도형들,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자연의 무늬들, 단청까지. 거기에는 ‘원’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것은 우로보로스의 형상이기도 하다. 서로 무관한 것들을 확장된 사고로 연관 짓고 통일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 지성의 본질이고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을 깔때기처럼 모아 자신의 광적 신념으로 융해시키는 광인의 사고와 다르지 않다.
<뱀의 기적>은 용이 되고자 몸부림치는 뱀을 표현하기 위해 용과 뱀을 다룬 동서양의 이미지를 한데 엮은 것이다. 구름 속의 용을 그린 중세 일본 수묵화와 우리나라 용 민화, 근대 독일의 뱀 삽화가 겹쳐져 나타난다. 레이어 밑에 깔린 용의 이미지는 해체되고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은 고통스러운 듯, 분노한 듯, 환희에 찬 듯 춤을 추는 뱀의 형상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 스스로는 극도의 고양감을 느끼는 데 반해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그는 고통스럽게 살아 날뛰는 한 개의 초라한 육체다. 나는 그러한 역설적인 느낌을 그림에 담아내려고 했고, 때때로 허물을 벗듯 극한의 시간을 겪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던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규정하는 ‘광기’의 파토스다.
<해>와 <달>은 <만다라>와 <뱀의 기적>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뱀이 꼬리를 물면서 뱀은 원형이 되고 이 원은 해와 달을 연상시키며 영원과 순환을 뜻하는 다른 원형의 상징들과 연결된다. 나는 이에 <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달>에는 관음보살의 이미지를 얹었다. 여기에는 종교적 체험과 광적 체험이 궤를 같이 한다는 나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종교가 현실을 초월하듯 광기도 객관을 초월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자가 자신을 신의 위치에 올려놓는다면 종교는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존재에 대한 체험과 믿음은 광기가 깊은 신앙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만다라>는 광기의 로고스, <뱀의 기적>은 광기의 파토스, <해>와 <달>은 광기의 에토스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곧 <미친 뱀에게 경배를>, 즉 광기에 다다른 자를 경외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지성의 기저에 깔린 본질이기 때문이며, 그 숨 막히는 심연과도 같은 본질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그는 살아남고자 사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 작가노트 (2023)
지금껏 아무리 그림의 내용을 말과 글로 전달하려 해도 그 핵심에는 빈 공백이 있었다. 공백을 에둘러 우연에 관한 추상적인 관념을 엮어 설명해보려고 애썼지만,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반문하곤 했다. 그럴 법도 했다. 내 설명에는 언제나 ‘내가’ 빠져 있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우연’을 주제로 삼겠노라 한 것은 그림에서 ‘나’라는 굴레를 벗어나겠다는 결심의 표현이었다. 우연이라고 칭하는 공백 너머에는 작가이기에 앞서 굴곡진 개인사에 갇혀 있던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숨어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다 입은 고문 피해로 평생 정신병을 앓았던 천재 아버지의 그늘은 내가 한 번도 벗어날 수 없었던 뼈아픈 가족사였다. 개인적인 서사를 떠나 우연을 다루면서 적어도 작가로서의 나는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작업과정에서 느끼는 해방감의 정체였다. 그러나 장기간 복용한 정신과 약물과 그 부작용으로 무척 약해져 있던 아버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지난 해 돌아가시면서 내게 드리웠던 그늘이 갑작스레 걷혔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는 아버지를 한없이 동경했던 어린 나 자신이 드러났다. 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에 머물며 영원과 초월을 논했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자기 병을 못 이겨 처참한 모습으로 병원에 실려 가곤 했던 그의 존재는 내 삶의 궤도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인력이었고, 세계였고, 나의 중요한 일부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피할 수 없는 공백이자 유실된 연결고리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삼면화들은 많은 부분 나의 콜라주 연작인 만신전(Pantheon)에 기대고 있다. 다양한 종교 도상과 함께 어린아이를 위한 캐릭터, 색종이, 각종 무늬, 옷을 장식하는 패치 따위가 함께 구성된 이 콜라주들은 아버지가 병상에 있던 시기와 돌아가시던 무렵에 집중적으로 작업한 것이다. 이 작업은 나에게 세계의 원체험이나 다름없었던 아빠와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다. 아빠는 모으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릴 때 아빠와 서재를 나눠 썼는데, 아빠의 서재에는 아빠가 깎은 티눈이나 발톱부터 시작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범주의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불교, 기독교, 이슬람 같은 주요 종교, 무속 신앙과 비주류 종교의 유인물들, 성상들, 철학책들, 사회학 서적, 사상서들, 과학책들, 하물며 성인 잡지, 즉석 복권, 화투 같은 것들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거의 모든 것에 한자와 알파벳, 기호와 수식 등으로 아빠가 빼곡히 쓴 난해한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한편 아빠의 서가에는 내가 사 모은 장난감이나 인형, 연예인 포스터, 종이접기, 어린이 도서 같은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고, 나는 책장에서 뜬금없는 책들을 뽑아 읽어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무질서하고 불가해하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아빠의 서재는 나에게 유일신을 섬기면서도 이교도의 신을 모시는 포용의 판테온이자, 구분과 이념을 초월해 이질적인 것들이 무작위적으로 맞물리는 이 세계의 원형이었다.
프랙털 연구 (Fractal Studies)에는 수학적인 형태에 대한 나의 오랜 관심이 집약되어 있으며, 이 연작을 통해 그동안 추구해온 우연성의 회화라는 주제가 본질적으로 변모했다. 나는 십여 년 전부터 고등학교 수학 교재에 실리는 무한등비급수 단원의 프랙털 도판을 주목해왔다.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뻔한 도상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미지에서 늘 기이한 감정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도형들을 캔버스로 옮겨오려고 시도할 때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내가 그것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호하게 남아 있었다. 이 오랜 수수께끼 같은 감정이 회화 연작으로 완성된 데는 하나의 계기와 다른 하나의 원동력이 있었다.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는 스위스의 아웃사이더 예술가인 엠마 쿤츠 (Emma Kunz)의 미술관에 방문하여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은 무한과 영원이라는 자신의 사변적인 레퍼토리에 몰입하면서, 정신이 흐릿해지고 졸립다는 이유로 약물을 거르고, 결국 병원에 실려 가고 마는 아버지에 대해 치미는 반항심이었다.
엠마 쿤츠는 자신이 세운 상징의 원리에 입각하여 좌우상하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정교한 색연필 드로잉을 남겼다. 이 그림들은 모두 그녀가 믿었던 신비한 영적인 에너지에 관한 것으로, 그래서 사실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치유의 힘을 가진 부적인 셈이었다. 나는 여러 기하하학적인 요소가 서로 일치되어 맞물리는 엠마 쿤츠에 작품에서 프랙털과 같이 수학적 반복의 원리를 가진 그리드, 옵아트 패턴을 병치시켜 레이어를 쌓아올리는 회화에 착안했다. 프랙털, 그리드, 옵아트 패턴은 모두 등비급수라는 동일한 수학적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특징은 무한히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는 규칙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리드와 옵아트는 무한대, 프랙털은 무한소에 해당한다. 이 요소들은 각기 다른 맥락에서 발생한 이질적인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수학적 원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각 레이어들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마스킹된 각각의 레이어는 내가 그동안 무작위 연구(Random Studies)를 통해서 발견한 다양한 칠하기 방식으로 메워졌다.
나는 아버지가 매달리던 철학적인 차원의 무한과 영원을 믿지 않았다. 내게 그것은 단지 정신병적인 환각 속에서 체험하는 헛된 감각일 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외치고 싶었다. 무한은 단지 수학 속에 존재하는 논리적 개념일 뿐, 우리의 유한한 시간과 비좁은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가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무한을 캔버스라는 협소한 평면의 공간 안에, 수학이라는 안전한 범주 안에 가두고 싶었다.
그런데 작품이 <두산 아트랩 2021>에서 발표된 후, 예상치 못한 피드백이 들려왔다. 프랙털 연구의 구조가 단순한 도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작품이 심오하고 난해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가까이 지내는 작가 한 명이 인상적인 감상을 전해왔다. 준아의 그림은 무척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데, 혹시 무슨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얼떨떨한 느낌을 받았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삶의 중대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녀가 옳았다는 것을 차츰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다루고 싶었던 것은 무한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경외였다는 것을 말이다. 왜 다른 모던 아트의 걸작 기하 추상이 아니라 주변부의 예술가인 엠마 쿤츠의 신비주의적인 그림이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는지도 설명이 되었다. 내가 수학적인 형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경직된 객관성이 아니라 신비로운 완전함, 영원과 무한을 품은 진리에 대한 흠모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오히려 영원과 무한의 절박한 신봉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유한하고 비천한 삶 가운데 갑자기 소멸했다는 잔인한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가 영원하고, 그저 지금은 무한한 시공간 어딘가에서 한없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을 것일 뿐이라고 믿지 않으면, 일순간 세상의 모든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다. 아버지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저 언제인지도 모를 소멸을 향해 내달리고 있을 뿐이라면 도대체 무엇에 닻을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나는 이렇게 내 삶 속에서 무한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했고, 프랙털 연구에 담았던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애증은 사실 숭배의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새로운 눈으로 오랫동안 천착했던 무작위 연구를 바라본다. 일반적인 범주와 구분을 벗어나 눈과 손이 가는 대로 끌어온 소재를 캔버스 위에 어지러이 얹으며 그림에 열중하던 나는 아버지의 혼란스러운 서재에서 즐거움을 느끼던 어린 아이와 다를 것 없었다. 아빠의 서재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임의의 경계를 아울러 단 하나의 진리를 뜨겁게 추구하던 아빠의 역설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선과 악, 성과 속, 고급과 저급, 동양과 서양, 좌파와 우파, 지적인 사고와 천한 본능, 그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작위한 뒤범벅 속에서 초월적인 일관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무차별적인 광기였지만, 한편으로는 남김없이 온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포용의 철학이 내가 그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며, 따라서 무작위는 내게 삶과 예술을 이끌어가는 수용의 방법론이자 실천적 태도를 이룬다.
<W/O> 작가노트 (2021)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여섯 점의 회화는 모두 ‘Random Studies’ 연작에서 추린 것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 ‘우연’에 관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즉흥적인 예감을 따라 재료를 자유롭게 다루며,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단순하고 거친 칠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를 찢어서 떨어트리거나, 다양한 경로로 얻은 이미지에서 벡터를 추출하여 캔버스를 부분적으로 덮고 칠하기를 반복하여 회화는 다층적인 구성을 갖는다.
‘우연’은 협소한 의식 안팎에서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습관, 취향, 기억 같은 것들을 떠나서 화면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일련의 체계를 세우고 난수(random number) 알고리즘, 제비뽑기를 이용하여 기하적인 형태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엄격한 규칙 하에 반복적으로 시행되는 작업 절차 속에서도, 난수 발생 알고리즘의 맹목적인 우연을 따라 뜻하지 않은 배치나 형태가 생겨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차츰 느끼는 해방감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경계가 흐려지고, 주관도 객관도 아닌 제3의 지대에 진입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Random Studies’에서는 기존에 세웠던 수리적인 틀을 깨고,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적인 효과와 나 자신의 감각적 판단이 혼재하는 ‘제3의 지대’에서 경험하는 확장감을 온전히 풀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로서는 그림에 무엇을 담기보다는 나를 거쳐 흘려보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했다. 작업을 거듭하면서 방법론의 특정한 패턴이 만들어졌고, 동일한 패턴으로 작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두고 제작된 그림들은 마치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인상을 풍겼다.
특정한 성격 없이 무한히 적용될 수 있는 난수열과는 달리, 우연을 매개하는 ‘나’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시공간에 특정적인 유한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그것은 캔버스에 어지러운 자취를 남겼다. ‘Random Studies’의 작업 과정이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며 불확실한 열린 결말을 전제하는 한,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삶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변수로 작용하며, 그림들은 저마다 변화한 일상의 틈에서 흘러나온 각각의 사정을 품는다. 무작위와 즉흥성에 의존하면서 무심코 흘려보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사실은 고스란히 그림 속에 간직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림 앞의 감상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은 내가 갖고 있는 방법론적 틀이나 맥락의 기반이 아니라 그 난삽한 이야기와 감정의 편린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그 서사들을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전시를 시인과 함께 준비했다. 화폭을 채우면서 남은, 내가 비우려던 이야기의 단서들이 시로써 새로이 엮이고, 그 인도에 따라 관객을 공감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자리는 나와, 시인과, 관객의 주관이 교차하는 중의적인 공간일 것이다.
‘우연’은 협소한 의식 안팎에서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습관, 취향, 기억 같은 것들을 떠나서 화면을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일련의 체계를 세우고 난수(random number) 알고리즘, 제비뽑기를 이용하여 기하적인 형태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엄격한 규칙 하에 반복적으로 시행되는 작업 절차 속에서도, 난수 발생 알고리즘의 맹목적인 우연을 따라 뜻하지 않은 배치나 형태가 생겨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차츰 느끼는 해방감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경계가 흐려지고, 주관도 객관도 아닌 제3의 지대에 진입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Random Studies’에서는 기존에 세웠던 수리적인 틀을 깨고,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우연적인 효과와 나 자신의 감각적 판단이 혼재하는 ‘제3의 지대’에서 경험하는 확장감을 온전히 풀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로서는 그림에 무엇을 담기보다는 나를 거쳐 흘려보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했다. 작업을 거듭하면서 방법론의 특정한 패턴이 만들어졌고, 동일한 패턴으로 작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두고 제작된 그림들은 마치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인상을 풍겼다.
특정한 성격 없이 무한히 적용될 수 있는 난수열과는 달리, 우연을 매개하는 ‘나’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시공간에 특정적인 유한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그것은 캔버스에 어지러운 자취를 남겼다. ‘Random Studies’의 작업 과정이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며 불확실한 열린 결말을 전제하는 한,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삶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변수로 작용하며, 그림들은 저마다 변화한 일상의 틈에서 흘러나온 각각의 사정을 품는다. 무작위와 즉흥성에 의존하면서 무심코 흘려보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사실은 고스란히 그림 속에 간직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림 앞의 감상자에게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은 내가 갖고 있는 방법론적 틀이나 맥락의 기반이 아니라 그 난삽한 이야기와 감정의 편린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그 서사들을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전시를 시인과 함께 준비했다. 화폭을 채우면서 남은, 내가 비우려던 이야기의 단서들이 시로써 새로이 엮이고, 그 인도에 따라 관객을 공감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자리는 나와, 시인과, 관객의 주관이 교차하는 중의적인 공간일 것이다.
<AFTERLIFE> 서문 (2019)
회화의 죽음, 살인자가 불러온 영원한 삶
‘회화의 죽음’이라는 테마는 역사가 꽤 길다. 지금도 도처에서 생산되는 장르의 생사를 따지는 것은 요새는 큰 논쟁이 되지 않지만, ‘죽음’의 모티프는 예술 담론에서 희미하게나마 변주되고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한번 ‘회화의 죽음’이라는 최초의 발화가 가능했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1839년, 사진의 등장을 목격한 화가가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화가의 이름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로, 예술계 직업에 종사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 미술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프랑스 파리 최고의 미술학교를 다녔고, 일찍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국가 명예 훈장을 받고 자신이 다닌 명문학교의 교수가 된 지 머지않아 집요한 혹평을 마주하면서 성공가도가 주춤하는데, 결국 비평에 대한 부담감으로 더 이상 살롱에 출품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화의 죽음’을 처음 언급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 그는 그러고도 그림을 계속 그렸으며, 그의 작품들은 바로 그 최초의 사진술을 통해 퍼져나가, 타국의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꾸준히 판매되었다.
그의 발언으로 상징되는 ‘회화의 죽음’ 이후 많은 예술이 크게 달라졌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어구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로 1835년경이다. 회화가 죽었다는 역사적인 첫 마디와, 예술 창작의 가치가 독립적이고 재귀적이라는 주장이 기술의 성과가 인간의 직능을 압도할 때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났음은 시사하는 바가 깊다. 이때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을 일으킨 『모팽 양 (1835)』의 저자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는 폴 들라로슈에게 끈질기게 혹평을 퍼부은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폴 들라로슈라는 인물은 1856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그가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형식으로 예술이 전개되었지만, ‘회화를 죽인’ 사진 덕분에 2019년 서울에 있는 우리들도 그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대강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룬 그에 대한 모든 정보도 책이나 웹을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그가 죽어버린 이상 그의 실존을 확인하는 방법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없다. 하지만 그가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들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 현존하는 실체를 가진 것은 남아 있는 그의 작품뿐이다.
<애프터라이프>는 그러한 작가와 작품의 운명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우리는 작가의 삶과 죽음에 관계없이 작품의 완성은 죽음과 다름없고, 이후에 작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자리매김하는 모든 과정은 ‘사후세계’라고 간주하기로 했다. 회화적 표면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물리적인 과정의 흔적이 납작하게 축적된 총합이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회화의 시간은 멈춘다. 작업 과정의 시작과 끝은 정지된 표면 위에서 달라붙고 멋대로 순환하며 미래라는 시공간으로 내던져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회하고 참고하는 웹, 책, 미술관 등 모든 문화적 아카이브 역시도 누군가가 생산해낸 사물과 언어, 이미지의 사후세계다.
회화의 오래된, 동시대적 조건
작가는 자신이 수행하는 예술적 실천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종적이고 횡적인 참조와 대화를 거듭한다. 방대한 아카이브에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시대이니만큼 다룰 수 있는 시공의 범위가 확대되었지만, 과거의 유산을 참고하고 동시대의 자원을 활용하는 예술가의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고 살면서 접할 수 있는 현실도 유한하다. 빠르게 확장되는 가상공간의 경험은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가변적인 맥락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보편화된 재현과 복제 기술이 주도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대상의 실재와 무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된 세계를 경험하고 향유한다. 그 속에서 문화적 경험은 매체의 시간과 함께 휘발된다. 재현을 가동하는 플랫폼이 존재하는 한 이미지의 시간성은 반복적으로 소환될 수 있지만, 플랫폼이 수명을 다할 때 지지체를 옮기지 못하면 과거 속에 폐쇄된다. 이미지가 비추는 대상의 실체를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환경에 잔존하는 캔버스 회화는 묘한 존재감을 갖는다. 회화가 사회의 주요 재현-서사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는 오래고, 폴 들라로슈가 말한 회화의 죽음이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비롯하여 동시대에 유통되는 회화는 언제나 캔버스 앞에 있었던 인물의 현존을 암시한다. 그것이 누구고 몇 명이었든, 누군가는 표면에 자국을 남긴 것이다. 실존하는 거의 모든 예술품이 그렇겠지만, 회화는 재현 매체의 ‘평면성’과 상호작용하며 파급력을 갖는다. 회화를 찍은 이미지만으로도 경험이 성립하는 착시가 일어난다. 굳이 말하면 회화는 경험, 사물, 이미지 사이의 무엇이며, 아직은 그 너머의 인간을 가리키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재현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로서 존재감을 갖는다. 이는 모든 회화적 실천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우리는 문화의 많은 영역에서 늘어난 생산의 주체들이 다변화되고 비가시화되면서도, 공동의 노력들이 유행의 타임라인 저편으로 빠르게 잊히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회화가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하기로 했다.
개념으로서의 회화, 조건으로서의 회화
예술적 실천의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개념적으로 회화를 정의하고 재조명하려는 유의미한 성과들이 있었다. 때로 ‘회화’는 물질에서 탈각한 개념으로 떠돌며 이질적인 방법론이나 맥락과 접합하여 흥미로운 예술적 생산을 파생해냈다. 그에 반응하여 이 전시는 회화를 물질적 조건의 한계로 삼은 작품들로만 구성되었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려졌다는 조건 이외에 특정한 유형이나 양식적 통일성을 내세우지 않기 위해 애썼고, 각자 이웃삼고 있는 참조점들도 다르지만 서서히 맞물리며 성긴 스펙트럼을 발산한다. 이 전시는 ‘스타일’이나 ‘뉘앙스’를 접어둔 채 ‘그리기’라는 행위가 만들어낸 시각적 평면의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 구성되었다. 작가는 특정한 취향과 문화의 미적 태도를 그리기의 방법론으로 함축하는 수상한 대변자 역할을 하거나(이윤상), 회화적 재현으로써 가능한 이미지-오브제들의 불가해한 조합을 은근히 풀어내는 한편(문경의), 색채와 형태에 대한 관심을 통해 풍경을 즉물적인 감각으로 응집시킨 표면으로 던져놓으며(김혜수), 기준점이 되는 과거의 양식을 헤쳐 모아 집요한 작업 과정을 거쳐 고해상도의 시각장을 펼치고(김영재), 우연성을 내포하는 회화 테크닉을 겹쳐 올려 다양한 층위의 추상성을 결합시킨 이미지를 완성시키기도 한다(이준아).
이들의 작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과거의 유산 및 동시대의 상황에 연루되어 있지만 작가가 구현하는 시각적인 언어 안에서 완결된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단절을 선언하지는 않으며, 다층적인 맥락들과 접점을 만들며 문화적인 연속성을 담지한 채 피상적인 제스처를 넘어서는 회화적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 애쓴다. 폴 들라로슈는 당시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절충하는 것으로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고는 마치 다음 세대를 저주하듯 ‘회화의 죽음’을 선언했고, 180년이 흐른 이 먼 시공에서도 그 희미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러나 후대의 작가들은 거부이든, 수용이든, 참조이든, 그 모두이든, 여러 방식으로 자신이 접속할 수 있는 예술적 자산과 관계 맺고 있으며, 그 양상은 그가 살았던 세계보다 훨씬 복잡하다.